바둑의 발상지는 어느 나라? 중국에서 태어난 기원과 일본에 전해진 역사를 알기 쉽게 해설
“바둑은 어느 나라의 게임일까?” 하고 궁금해한 적이 있나요.
일본의 전통문화라는 이미지가 강해, 일본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사실, 바둑의 발상은 중국입니다.
태어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으로 여겨집니다.
이 글에서는 바둑의 기원에 관한 설부터 “일본 발상”“한국 발상” 같은 오해의 진상까지 정리했습니다.
일본에 언제 전해져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도 함께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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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발상은 중국. 약 4000년 전에 태어났다고 여겨진다
바둑의 발상국은 중국입니다.
일본기원에 따르면, 바둑의 시작은 약 4000년 전 중국이라고 합니다.
다만, 누가 언제 고안했는지를 보여 주는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의 제왕이 만들었다는 전설이나, 점술 도구가 시작이라는 설 등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인도나 티베트를 발상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주류는 중국설입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바둑은 한반도와 일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일본에는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여겨지며, 한반도를 경유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围棋(웨이치)”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바둑의 기원에 얽힌 3가지 설
바둑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설을 포함한 다양한 설이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3가지 설을 소개합니다.
어느 것도 결정적인 근거는 없지만, 고대 사람들이 바둑을 어떻게 보았는지가 전해집니다.
요·순이 아이 교육을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
가장 유명한 것은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 요(堯)가 바둑을 고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는 아들 단주를 현명한 인물로 키우기 위해 바둑을 만들어 가르쳤다고 전해집니다.
이 전설에는 약간의 아이러니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요는 결국 아들 단주가 아니라, 가문에 얽매이지 않고 선택한 순에게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바둑을 통한 영재교육은 그다지 잘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요도 순도 전설상의 인물입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바둑의 오래됨과 깊이를 말해 주는 전승으로 받아들여 두면 좋겠습니다.
점술이나 천문의 도구가 시작이라는 설
바둑판과 바둑돌은 원래 점술이나 천문에 쓰는 도구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바둑판을 우주에, 돌을 별에 비유해 달력이나 길흉을 읽었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19로판의 교점은 361곳이며, 중앙의 1점을 제외하면 360이 됩니다.
1년의 일수에 가까운 수로, 네 모서리는 사계절에, 중앙의 “천원”은 우주의 중심에 비유되어 왔습니다.
흰 돌을 낮(양), 검은 돌을 밤(음)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설이 맞다면, 점술 도구가 훗날 두 사람이 집을 다투는 놀이로 바뀌었다는 뜻이 됩니다.
인도·티베트 기원설도 있다
중국 이외의 땅을 발상으로 보는 설도 있습니다. 일본기원도 바둑의 기원에 대해 “인도나 티베트로 보는 설도 있다”고 소개합니다.
티베트에는 20세기 중반까지 “미만”이라 불리는 바둑이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의 19로판이 아니라 17로판을 사용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전해진 초기 바둑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인도나 티베트를 발상으로 보는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중국 발상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기록과 출토품으로 보는 중국의 바둑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바둑이 두어졌다는 것은 전설뿐 아니라 문헌과 출토품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둑판 출토품을 통해서는 판의 크기가 시대와 함께 변해 왔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논어』『맹자』에도 등장하는 바둑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가 되면 바둑은 전략을 연마하는 놀이로 퍼졌습니다.
이 시대 사상가들의 말을 모은 『논어』와 『맹자』에도 바둑이 등장합니다.
『논어』에서는 공자가 “하루 종일 멍하니 지내느니 도박이나 바둑이라도 하는 편이 낫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맹자』에는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로 “혁추(弈秋)”라는 명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2000년 이상 전부터 강한 기사가 알려진 존재였던 셈입니다.
시대가 내려간 북송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바둑서로 여겨지는 『망우청락집(忘憂清楽集)』이 정리되었습니다.
삼국시대 오(吳)의 손책과 여범의 대국으로 여겨지는 기보도 실려 있습니다.
바둑판은 17로에서 19로로. 출토품으로 알 수 있는 변화
지금의 바둑판은 세로·가로 19줄이 그어진 19로판입니다.
그런데 옛 중국에서는 17로판이 사용되었습니다.
2002년, 산시성에 있는 전한 경제의 능묘 양릉에서 도제 바둑판의 파편이 발견되었습니다.
황족이 아니라 능묘를 지키는 사람들이 놀이에 사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원전 시대부터 신분이 높지 않은 사람들도 바둑을 두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후한 시대가 되면 허베이성 왕두현의 무덤에서 바둑판이 출토되었습니다.
당시 문헌의 기록과 함께 보아, 이 무렵의 바둑판은 17로였다고 여겨집니다.
그 후 남북조 시대에 판이 19로로 퍼졌습니다.
수(隋) 시대의 장성묘(허난성 안양시)에서는 19로 바둑판이 출토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판의 크기는 약 1400년 이상 전에는 완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금기서화”라 불린 교양으로서의 바둑
고대 중국에서 바둑은 지식인의 교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생각을 나타내는 말이 “금기서화(琴棋書画)”입니다.
금은 음악, 기는 바둑, 서는 서예, 화는 회화를 가리킵니다.
이 네 가지는 군자(훌륭한 인물)가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 여겨져 아이들에게도 가르쳤습니다.
바둑은 단순히 승패를 겨루는 놀이로만 두어졌던 것이 아닙니다.
사고력과 품격을 닦는 수단으로 소중히 여겨져 왔습니다.
바둑은 일본 발상? 한국 발상? 자주 있는 의문에 답변
바둑에 대해서는 “일본 발상 아닌가?” “한국이 발상이라고 들었다”는 말도 자주 들립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도 한국도 발상국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오해가 생길까요? 각 나라와 바둑의 관계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바둑이 일본 발상이 아닌 이유
바둑은 중국에서 태어났고, 일본에는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여겨집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게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일본 발상으로 생각되기 쉬운 것은, 일본에서 바둑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에도 시대에는 막부가 바둑의 가문(家元)을 보호해 기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도 일본의 기사와 일본기원이 해외 보급에 힘써 왔습니다.
이런 역사로 인해 바둑에는 “일본의 전통문화”라는 이미지가 정착한 것입니다.
한국 발상도 아니다. 한반도에 전해진 바둑
한국도 바둑이 중국에서 전해진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한반도에는 늦어도 5세기에는 전해졌다고 보입니다.
한반도의 오래된 역사서 『삼국사기』에는 바둑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바둑을 잘 두는 승려 도림을 백제로 보냈습니다.
도림은 바둑을 좋아하던 백제의 개로왕에게 접근해 신뢰를 얻고, 대규모 공사를 권해 국력을 약화시킵니다.
그 후 백제의 도읍 한성은 475년에 고구려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바둑을 “바둑(바둑)”이라고 부릅니다.
현재의 한국은 중국·일본과 나란히 바둑 강국입니다.
발상국은 아니지만, 바둑이 성한 나라임은 틀림없습니다.
영어에서 바둑이 “Go”로 불리는 것은 일본어에서 유래
바둑은 영어로 “Go”라고 불립니다.
이 이름은 일본어 “碁(고)”에서 왔습니다.
서구에는 주로 일본을 통해 바둑이 소개되었고, 서양의 초기 기사들은 일본 프로에게서 배웠습니다.
20세기에는 일본기원이 영어 잡지를 내거나 해외에 기사를 파견하는 등 보급을 뒷받침했습니다.
세계에 알려진 이름이 일본어 유래이므로, 일본 발상으로 착각되기 쉬운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바둑은 언제 일본에 전해졌을까?
바둑이 일본에 전해진 정확한 시기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래된 기록과 문화재를 통해, 상당히 이른 단계에서 일본에 뿌리내렸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전래의 단서를 3가지 관점에서 살펴봅시다.
『수서』 왜국전에 남은 기록
일본의 바둑에 대해 쓰인 오래된 기록으로, 중국 역사서 『수서』의 왜국전이 있습니다.
7세기에 완성된 책으로, 당시 일본인(왜인)에 대해 “기박, 악삭, 저포의 놀이를 좋아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棋)”가 바로 바둑을 가리킨다고 여겨집니다.
『수서』는 견당사가 파견되기 전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즉, 견당사 시대보다 이전부터 일본에서는 바둑이 두어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701년에 제정된 다이호 율령에도 바둑이 등장합니다.
승려의 규정을 정한 “승니령”에서는 쌍륙이나 도박을 금지하는 한편, 바둑은 금지되지 않았습니다.
법에 적힐 정도로 바둑은 이미 친숙한 존재였던 것이겠지요.
기비노 마키비가 전했다는 전설과 “바둑 발상지”
일본의 바둑 하면 기비노 마키비(吉備真備)라는 이름이 자주 거론됩니다.
나라 시대에 견당사로 당에 건너간 학자로, 바둑을 일본에 가져왔다는 전설이 유명합니다.
기비노 마키비는 “일본 바둑의 원조”라고도 불리며, 출신지로 여겨지는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마비초는 바둑의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부터는 초등학생 전국대회 “구라시키 기비노 마키비배 어린이 기성전”이 열려 왔습니다.
“일본에서의 바둑 발상지”를 찾는 사람에게 마비초는 인연이 깊은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의 『수서』와 다이호 율령 기록을 생각하면, 바둑은 기비노 마키비 이전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비노 마키비 이야기는 일본 바둑을 발전시킨 인물에 얽힌 전설로 즐기면 좋겠습니다.
쇼소인에 남아 있는 바둑판과 바둑돌
나라 시대에 바둑이 활발히 두어졌다는 증거는 나라의 쇼소인에도 남아 있습니다.
쇼소인에는 바둑판 3면과 바둑돌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목화자단기국(木画紫檀棊局)”입니다.
자단을 사용하고, 색이 다른 나무 등을 조합하는 “목화”라는 기법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바둑판입니다.
이 물품들은 쇼무 천황과 인연이 있는 보물로 전해져 왔습니다.
천황의 주변에도 바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발전한 바둑의 역사
일본에 전해진 바둑은 귀족에서 무사, 승려, 그리고 서민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독자적인 제도 아래에서 기력이 연마되어, 일본은 바둑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됩니다.
시대별 흐름을 차례로 살펴봅시다.
헤이안 시대: 귀족의 소양으로 『겐지모노가타리』『마쿠라노소시』에도 등장
헤이안 시대, 바둑은 귀족의 놀이로 궁중에 퍼졌습니다.
당시의 문학 작품에도 바둑 장면이 자주 그려져 있습니다.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에는 여성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히카루 겐지가 엿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에도 바둑이 등장해, 궁정 사람들의 생활에 바둑이 스며들어 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고 천황과 바둑의 명수로 알려진 승려 간렌의 일화도 유명합니다.
천황이 금 베개를 걸고 간렌과 대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 무사와 승려, 서민으로 확산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가 되면 바둑은 귀족만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무사와 승려, 더 나아가 농민과 상인에 이르기까지 두는 사람이 넓어져 갑니다.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바둑 규칙서 중 하나로 여겨지는 『바둑식(囲碁式)』이 정리되었습니다.
요시다 겐코의 『쓰레즈레구사』에도 바둑과 관련된 이야기가 몇 가지 나옵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즐기게 되면서, 바둑은 일본 문화로서 뿌리를 내려 갔습니다.
에도 시대: 가문(家元) 제도와 혼인보로 황금기
에도 시대는 일본 바둑의 황금기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한 무장들도 바둑을 좋아했고, 막부는 바둑을 두텁게 보호했습니다.
중심이 된 인물은 교토 자코지의 승려였던 혼인보 산사(本因坊算砂)입니다.
산사는 혼인보 가문의 초대이며, 막부에서 바둑을 총괄하는 “고도코로(碁所)”의 첫 인물로도 여겨집니다(고도코로가 언제 제도로 정비되었는지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산사의 사후에는 혼인보·이노우에·야스이·하야시 4가문에 의한 가문 제도가 완성되어 에도 시대 말까지 이어집니다.
가문들은 막부로부터 봉록을 받는 대신, 매년 11월 17일 에도성에서 쇼군 앞에서 대국을 선보였습니다.
이 행사가 “오시로고(御城碁)”입니다.
가문끼리 위신을 걸고 실력을 겨루면서 바둑 기술은 크게 진보했습니다.
근대~현대: 일본기원 설립과 세계로의 확산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의 보호를 잃은 가문들은 어려운 시대를 맞습니다.
그 후 기사들의 단체가 몇 차례 생겼다가 갈라지는 시기를 거쳐, 1924년에 일본기원이 설립되었습니다.
1939년에는 혼인보의 이름을 실력으로 다투는 타이틀전 “혼인보전”이 시작됩니다.
프로 기사가 타이틀을 다투는 현재의 기전 형태가 여기서부터 갖추어져 갔습니다.
지금은 바둑이 전 세계에서 두어지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바둑 AI “AlphaGo”가 정상급 기사에게 승리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AI를 활용한 연구도 진행되어, 4000년 역사를 가진 게임은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정리
바둑의 발상은 중국이며, 약 4000년 전에 태어났다고 여겨집니다.
요가 아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이나, 점술 도구가 시작이라는 설 등이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 발상이라는 것은 오해입니다.
둘 다 중국에서 바둑이 전해진 나라로, 일본에서는 영어명 “Go”의 어원이 될 정도로 바둑이 발전했습니다.
일본에는 늦어도 7세기 무렵에는 전해졌다고 생각됩니다.
쇼소인의 바둑판과 헤이안 문학에 그 모습이 남아 있고, 에도 시대에는 가문 제도 아래에서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이처럼 긴 역사를 지녔지만, 바둑의 규칙은 누구나 외울 수 있을 만큼 단순합니다.
흥미가 생겼다면 PlayGo.gg에서 부담 없이 첫 한 판을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